버스 창가에 고인 햇살은
반쯤 졸린 눈꺼풀을 간질이며
가로수를 지나 추억 속으로
천천히 우리를 데려갔다.
차창 너머의 풍경은
평소엔 스쳐 지나가는 동네 이름조차
오늘은 시처럼 느껴졌지.
모두가 특별했던, 그 하루.
한 손엔 간식, 한 손엔 친구의 손
들뜬 웃음 사이로 섞인
소소한 농담과 가벼운 장난들,
교복이 아닌 마음으로 입은 자유.
선생님의 눈치도
그날만큼은 조금 느슨했고
사진기 앞에서 우린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포즈를 취했지.
그 순간이 영원할 줄 알았어.
푸르른 바다 앞에서
우리는 바람보다 먼저 달렸고
산 아래서 들었던 이름 모를 새소리도
이젠 가끔 꿈결처럼 떠오른다.
밤이 되면
펜션 마룻바닥에 둘러앉아
초코파이 하나에도 웃음이 터졌고
그리움이란 말을 몰랐던 우리였지만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
몰래 속삭이던 이야기들,
첫 고백에 떨리던 음성,
무심히 맞잡은 손끝의 온기까지
모두 그 밤에 묻어 두었지.
불꽃놀이가 터질 때
하늘이 아닌 우리 마음이
더 환히 피어났던 걸 기억해.
별이 쏟아진다며 소리치던 너의 눈동자에
내 마음도 함께 떨리고 있었어.
그리고,
돌아오는 길의 고요함 속에서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우린 다 알고 있었지.
이 시간이 다시 오지 않을 거란 걸.
시간은 흘러
이제는 각자의 길을 걷지만
그날의 우리, 그 순수한 발걸음은
아직도 내 마음 어딘가에서
푸르게 반짝이고 있어.
교복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던
작은 조약돌 하나가
오늘도 주머니 없는 어른의 삶 속에서
문득문득 나를 불러낸다.
잊지 않을게.
그 해 봄, 바람 따라 웃던 너의 얼굴.
우리의 수학여행.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러나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그 찬란한 하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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