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은 산허리를 감싸 안고
문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종소리가 울리면
닫혀 있던 마음이 먼저 열리고
길은 바위와 계곡을 넘어
스스로의 그림자를 밟게 한다.
운문사,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나는 오래된 발자취를 듣는다.
돌계단의 이끼,
물기를 머금은 돌 위에 남겨진 흔적들,
누구도 기억하지 않지만
모두가 이곳에 남아 있다.
대웅보전 앞에 서면
나무 기둥은 바람과 햇살을 견디며
천천히 빛을 지워왔다.
화려함이 사라질 때
비로소 드러나는 나이테처럼,
사람의 삶도 덧칠이 벗겨져야
본래의 얼굴이 드러나는 것일까.
석불 앞에 앉으면
돌의 차가움은 곧 따스함으로 번진다.
눈을 감은 듯, 열린 듯
고요히 머문 시선이
내 안의 분별을 지워간다.
말없이 건네는 미소 속에서
나는 오래된 소란을 놓는다.
저녁,
바람 따라 울려 퍼지는 염송은
산새의 날갯짓처럼 가볍고
골짜기를 적시는 물결처럼 깊다.
그 속에서 나는 묻힌다.
묻히면서도 오히려 밝아진다.
내가 쫓던 것,
내가 놓지 못한 것,
그 모든 것이 소리에 실려 흩어진다.
산사의 길 위를 걷는 이들,
그 발걸음은 그림자마저 소리 내지 않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이
산자락을 감싸듯 고요히 이어진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본다.
젊음과 늙음이 뒤섞인 얼굴에서
세속의 시간이 스러지고
잠시나마 ‘머무름’이란 단어의 빛을 본다.
밤이 내려앉으면
기와 지붕 위로 별빛이 흩어진다.
천년의 비와 바람을 견딘 자리에서
기와는 작은 호수처럼 빛을 머금는다.
그 빛 아래 서 있는 동안
나는 손에 쥔 것들을 내려놓는다.
욕망이 아니라,
욕망을 붙드는 두려움이
천천히 흩어져간다.
운문사,
구름의 문이라 불린 이곳에서
나는 안다.
구름은 잡히지 않지만
그 부유 속에서 길은 열리고
그 길은 밖으로 향하지 않고
끝내 내 안으로 향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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