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이 불어오면
나는 오래된 기억 속에서
낡은 목소리 하나를 꺼내 듣는다.
“밥은 먹었니?”
“천천히 가라, 다치지 말고.”
“너는 항상 내 걱정만 시키는구나.”
그때는 대답도 건성이고
고개조차 들지 않은 채
지겹다, 귀찮다,
잔소리라고만 여겼던 말들.
그 말들이 이제는
밤의 고요 속에서 별처럼 반짝이며
나를 부른다.
사라진 줄 알았던 목소리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여전히 살아
숨결을 이어간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나는 더 멀리 떠밀려 왔는데,
그 목소리만은 변하지 않는다.
언제나 똑같은 온도로,
언제나 나를 먼저 생각하는 결로,
내 마음을 감싼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모든 말들이
내 삶을 붙잡아주던
가늘고도 단단한 실이었다.
어린 시절의 집 앞 마당,
낡은 기와 아래 앉아 있던 부모의 모습,
저녁이 익어가는 부엌 냄새,
밥상 위로 오르던 따끈한 된장의 김.
그 곁에서 흘러나오던 목소리들은
내 삶의 첫 노래였다.
나는 그 노래가 시끄럽다고만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노래가 없으면
나는 살아갈 힘조차 없었음을 안다.
사람은 떠나고
집은 허물어지고
시간은 무심히 흘러가도
그 목소리는 지워지지 않는다.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불현듯 찾아와
눈시울을 적신다.
나는 이제 안다.
사랑은 거창한 고백이나
찬란한 선물이 아니라는 것을.
사랑은 늘 곁에 머물며
“조심해라”라는 말로,
“밥 먹어라”라는 말로,
때로는 “왜 그렇게 하니”라는
꾸지람의 모습으로 다가왔음을.
그 목소리들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으리라.
삶은 수없이 무너지고,
길은 끊임없이 흔들렸지만
보이지 않는 그 말들의 손길이
나를 잡아 일으켰다.
이제야 그 소중함을 알기에
나는 매일 기도한다.
다시는 들을 수 없는 그 목소리가
내 꿈속에라도 찾아와
한 번만 더 말해 주기를.
“밥은 먹었니?”
“몸은 괜찮니?”
“나는 늘 네 편이다.”
눈물이 흐른다.
그리움이란 언제나
뒤늦게 피어나는 꽃이어서
만개할 때쯤엔
그 꽃을 보여줄 사람이 없다.
그러나 나는 안다.
사랑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 목소리는 내 안에 남아
오늘도 나를 살아가게 한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누군가에게 남길 말도
아마 잔소리일 것이다.
“밥 먹어라.”
“몸 조심해라.”
“늦지 말고 들어와라.”
그 말들이 귀찮다며
내 곁의 이가 고개를 돌릴지라도,
나는 안다.
그 말이야말로 가장 깊고
가장 오래 남는
사랑의 모양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바람에 실려 오는
낡은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눈물이 나지만, 따뜻하다.
그리움은 아픔이 아니라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니까.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순간들이, 시간이 흐른 뒤 가장 그리운 장면이 되곤 합니다.
잔소리 같았던 말 한마디, 당연하게만 여겼던 목소리 하나가 사실은 우리의 삶을 붙잡아주던 사랑이었음을…
그 깨달음이 눈물과 함께 찾아올 때, 비로소 우리는 사랑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됩니다.
혹시 여러분 마음속에도 문득 떠오르는 목소리가 있나요?
오늘은 그 소리를 기억하며, 곁에 있는 이들에게 잔소리처럼 들릴지라도 따뜻한 말을 건네보면 어떨까요.
그 말이 언젠가 누군가의 가장 깊은 그리움으로 남을 테니까요.
'낙서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운문사의 그림자에 서서... (83) | 2025.08.18 |
|---|---|
| 기억의 노래... (75) | 2025.08.17 |
| 광복 80년, 한 사람의 나이로... 님을 위해 쓴 자작시... (82) | 2025.08.15 |
| 벼이삭 사이로 불어오는 이야기... (81) | 2025.08.14 |
| 그립다, 여름 밥상... (84) | 2025.08.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