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어나던 날,
세상은 함성을 질렀다.
억눌린 숨이 터지고
오래 눌린 땅이 한꺼번에 숨을 내쉬던 날.
그날 나는 갓난아이처럼 울며 눈을 떴다.
해방이라 불린 그 첫 울음 속엔
조상의 한과 피가 섞여 있었고
낯선 군화의 그림자는 여전히
골목 끝 어둠 속에 숨어 있었다.
스무 살의 나는
아직 세상의 넓이를 몰랐다.
그저 북쪽과 남쪽이 서로 등을 돌린 채
서로를 향해 말이 아닌 총을 겨누는 시대.
청춘의 피는 흘렀고
가슴은 늘 상처로 젖어 있었다.
서른이 된 나는
무거운 짐을 이고 일터로 나갔다.
맨손으로 공장을 세우고,
논밭을 갈며,
가난이라는 질긴 밧줄을 끊으려
밤에도 등을 굽혔다.
손마디는 굳은살로, 마음은 그을음으로 단단해졌다.
마흔 즈음,
나는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거리를 달리던 버스와 기차는
이제 더 멀리, 더 빨리 달렸고
하늘에는 날개 달린 철새들이
새로운 땅과 바다를 넘어갔다.
나는 세상과 연결되었다.
그러나 마음 한편,
분단의 상처는 아직 덧나고 있었고
미래는 여전히 갈라진 강 위에 흔들렸다.
쉰의 나이에
나는 드디어 조금은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내 힘으로 살아왔다.”
아이들은 자라나 세계를 향했고
거리에선 언론과 민주를 부르는 목소리가
폭풍처럼 번져갔다.
그 목소리는 나를 더 곧게 세웠다.
예순이 넘자,
나는 어른이 되었다고 믿었다.
전쟁의 참호를 벗어난 지 오래였고
경제의 강물은 넓게 흘렀다.
그러나 속으로는 안다.
상처는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때로는 다시 욱신거린다는 것을.
북녘의 그늘은 여전히 내 어깨에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여든 살.
주름진 얼굴로 이 땅을 바라본다.
가난하던 시절을 지나,
온몸이 터질 듯 숨 가쁘던 청춘을 지나,
이제는 후손에게 무엇을 남길지
깊이 생각하는 나이.
내 삶은
전쟁과 평화,
눈물과 웃음,
갈라짐과 다시 잇기의 반복이었다.
나는 한 사람처럼 살아왔지만
내 안에는 수천만의 심장이 뛰었다.
여든 해를 살며 배운 건 이것이다.
자유는
그저 주어진 날의 선물이 아니라는 것.
피로 얻은 자유는
돌봄과 경계가 없으면 쉽게 빛을 잃는다는 것.
오늘 나는 후손들의 눈을 바라본다.
그들의 웃음 속에서
나는 또다시 갓난아이로 태어난다.
그러나 이번엔
무력한 울음이 아니라,
단단한 약속으로 시작한다.
다시는 이 땅이
누구의 발아래 짓밟히지 않도록,
다시는 이 강과 산이
피로 물들지 않도록,
다시는 자유가
기억 속에서만 숨 쉬지 않도록.
여든의 나는 안다.
광복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매일 새로 맞이해야 할
오늘의 숨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내 여든 해의 이야기를
미래의 백 살, 천 살이 될
이 땅의 후손들에게
천천히, 그러나 끝까지 들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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