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의 어깨 위에 가만히 내려앉은 8월,
햇빛은 여전히 뜨겁지만
그 속에는 서서히 물러나는 계절의 그림자가 배어 있다.
들판의 벼는 고개를 숙이고,
매미 울음 사이로
가느다란 귀뚜라미 소리가 스며든다.
한낮의 바람은 여전히 무겁지만,
저녁이 되면 문틈 사이로
조금은 선선한 속삭임이 스쳐 간다.
8월은 여름과 가을이 맞닿은 순간,
계절이 바뀐다는 소식을
아무 말 없이 전해주는 시간이다.
그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도
조금씩 색을 바꾼다.
여름 내내 타오르던 설렘과 열기는
서서히 가라앉아 깊어지고,
그 자리를 차지한 건
묵직한 그리움과 부드러운 회한이다.
어린 시절,
시골 마당 그늘에서 먹던 참외의 단맛이
문득 혀끝에 머문다.
옆에서 부채질하던 어머니의 손,
마루 끝에 걸터앉아
멀리 논두렁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뒷모습...
그 장면들이 저녁 노을빛처럼 천천히 되살아난다.
이 계절은 기억을 불러오는 힘을 지녔다.
빛바랜 사진처럼 꺼내든 지난 날들이
바람결에 살짝 흔들리고,
그 속에서 잊었던 웃음과 눈물이 번진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
하늘은 금빛과 붉은빛이 섞여 물결치고,
그 사이로 새들이 귀가를 서두른다.
바다는 여전히 깊지만,
그 위에 내려앉은 빛은 한결 부드럽다.
나는 이 8월의 한가운데 서서
조용히 숨을 고른다.
모든 것이 아직 여름이지만,
곧 다른 이름을 갖게 될 것을 안다.
햇살은 뜨겁되 서늘하고,
바람은 가볍되 묵직하다.
그 모순 속에서 나는
지난 계절의 흔적을 손끝으로 더듬는다.
밤이 오면
별빛이 하늘을 덮고,
달빛이 느리게
지나온 여름을 쓰다듬는다.
그 빛을 품으며
나는 오늘도 조금은 여름이고,
조금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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