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마 끝에 달린 작은 종 하나
그 자리는 언제나 가장 조용한 자리였다.
누가 묻지 않아도 바람이 먼저 다가와
사뿐히 소리를 건네곤 했지.
“거기, 잘 있느냐.”
바람은 그렇게 물어오고
종은 조용히 몸을 흔들었다.
소리 대신 마음을 울리며
오래된 기억 하나를 꺼내 주곤 했다.
눈이 쌓일 때도, 비가 올 때도
종은 울었다.
처마의 어둠 속에서 맑은 종소리를 틔우며
누군가의 발길을 기도하듯 기다렸다.
바람은 지나가고, 사람은 떠났어도
종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계절마다 스쳐간 구름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아침마다 산새의 첫 인사를 품으며
저녁마다 단풍이 흩날리는 소리에
한 번 더 마음을 흔들었다.
누구는 말했다.
종은 늘 울리기만 한다고.
누구는 물었다.
바람이 없다면, 종은 외롭지 않느냐고.
그러나 종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흔들리는 것이 존재의 이유인 양
오늘도 조용히 바람을 기다렸다.
나도 어느 날
그 종 아래 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어릴 적 돌아가신 어머니가
절집 마당 끝에서 불렀던 이름을 떠올렸다.
종소리 속에 섞여 흐르던 그 부름이
내 안의 가장 깊은 방을 두드렸다.
풍경(風磬).
이름도 조용하고
소리도 조용한
그러나 마음에는 가장 먼저 닿는
한 점 바람의 울림.
종은 오늘도 울고 있다.
떠난 이들을 위한 길잡이처럼
머무는 이들을 위한 자비처럼
단 한 치의 미동으로
그 모든 것을 품고 있다.
나는 그 자리를 다녀간 바람이고
종은 그 자리를 지켜온 마음이다.
눈물이 흘러도, 웃음이 나도
그 소리엔 그저 사람이 깃들 뿐.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외롭다면
그 종소리를 한번 떠올려 보라.
바람이 가는 길마다
누군가의 사랑은 그렇게 울고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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