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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장

닥실만댕이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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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햇볕은
하늘에서 녹아내릴 듯 쏟아졌고
풀잎마다 매미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오던
칠월의 한가운데,

엄마와 나는
낡은 비료포대를 들고
닥실만댕이로 향했네.

그 밭은
동네 끝 산골짜기 위,
가파른 길 끝에 숨어 있어
한낮에도 짙은 그늘이 드리운 곳.
어른들도 발걸음이 망설여지던 그 숲길을
엄마는 꼬맹이 손으로 잡고 올랐네.

다리가 아프다고 칭얼대던 내게
엄마는 말없이 등을 내어주었지.
낡은 저고리 등판은
땀에 젖어 검게 번들거렸고
숨결은 거칠게 오르내렸지만
그 한 걸음 한 걸음은
산보다 높았네.

밭에 이르자
옥수숫대는 내 키를 훌쩍 넘겨
푸른 벽처럼 하늘을 가렸고,
그 사이에서 엄마는
끝없이 손을 뻗어 옥수수를 따셨네.

햇볕은 더웠고
바람은 숨죽은 듯 고요했으며
엄마의 이마에는
구슬 같은 땀이 송골송골 맺혀
눈가를 타고 흘렀네.

그때마다 엄마는
머리에 두른 수건을 풀어
대충 얼굴을 훔치곤
다시 쉼 없이 손을 놀리셨지.

나는 그늘 한켠에 앉아
산개미와 장난치고,
흙장난을 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네.
그러다 포대 가득 옥수수를 담은
엄마가 나타났을 때,
그 포대는
산만큼이나 커 보였네.

엄마는 목에 걸어둔 수건을
다시 머리에 둘러 매고
한 손엔 포대를 붙잡고
또 다른 한 손으로는
내 손을 꼭 잡으셨지.

우린 그렇게
가파른 산길을 내려왔네.
오전에 한 번,
오후엔 두 번…
며칠 동안이나
엄마는 그 무섭고 험한 닥실만댕이를
넘고 또 넘으셨지.

삶아낸 옥수수 냄새가
낡은 기와집에 퍼지던 저녁,
나는 그 달콤한 맛에 웃었지만
엄마의 두 손엔
갈라진 굳은살이 피어 있었네.

그 옥수수는
양은 냄비에 삶아져
우리의 저녁이 되었고,
어떤 것은
시장에서 팔려
생선이 되고 반찬거리가 되었으며
내가 갖고 싶다 졸랐던
하얀 고무신 한 켤레가 되었네.

몇 장 남지 않은 지폐와
한 줌의 동전을 남기고,
엄마는 말없이 미소 지으셨다.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내 마음에 뜨겁다.
그때의 엄마는
세상 어떤 산보다 높았고
하늘의 햇볕보다도
눈부셨다.

이제 나는
그 여름을 다시 부를 수 없지만
옥수수 잎사귀가 스치는 소리,
풀벌레가 우는 소리,
엄마의 거친 숨결이
아직도 내 귓가에서 들린다.

칠월의 한가운데,
닥실만댕이 그 길 위에서
엄마는 한없이 강했고
나는 한없이 작았다.

세월이 흘러도
그 여름의 무게만큼은
평생 내 가슴 속에서
사라지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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