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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장

서울역에서 1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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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대합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누구의 얼굴도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속에서  
내게 익숙한 감정들을 찾아낸다.  

누군가는 캐리어를 끌고 부산으로,  
누군가는 삼각김밥 하나로 점심을 대신하고,  
누군가는 일터도 없는데  
그냥 앉아 있었다.  
잠시 쉬는 건지,  
그냥 잠시 도망친 건지 모르겠지만,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아도  
이 공간에선 다들 그런 마음인 것 같았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의자에 앉아 배터리 8% 남은 폰을 들고,  
어딘가로 떠나는 척하면서  
무언가를 찾는 척했다.  

쓰디쓴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마음이 먼저 식은 탓에  
커피가 쓰게만 느껴졌다.  
누가 내 이름을 불러줄 일도 없지만  
어느 순간,  
괜히 익숙한 브랜드에 기대고 싶어졌다.  
진동벨이 울리면  
그나마 내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누군가 내게 기대고 있는 느낌이 들까 싶어서.  

“너 뭐 해 요즘?”  
이라는 톡이 왔다.  
“잘 지내”라고 썼다가,  
결국엔 “ㅇㅇ”로 보냈다.  
요즘엔 그게 더 솔직한 답인 것 같았다.  

서울역에서 사람들은  
어딘가로 가고 있지만,  
그게 꼭 목적지인 것 같지 않다.  
그저 계속 걸어가고,  
계속 흘러가는 걸음들.  

어떤 중년 남자는  
“이 짓도 벌써 20년째지”  
하며 캔맥주 두 개를 샀다.  
하나는 아마 혼자 마실 거면서도  
둘을 샀다.  
그냥, 어느 순간 그렇게 하는 게  
버릇처럼 되어버린 걸까.  

서울역에서는  
계획도 흐릿하고,  
기분도 가라앉고,  
사랑도 잠시 멈추는 느낌이다.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지만,  
그 길 끝에서 기다리는 게 무엇일지  
정확히 알 수 없다.  

화장실에서 눈물을 닦고 나온 사람,  
문자 하나에 멍하니 서 있는 사람,  
택배 상자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든 사람.  

서울역은 그렇게  
다들 잠시 머무는 곳 같다.  
여기서는 지친 마음을 잠시 고르고,  
숨을 돌릴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기둥에 붙은 광고 문구,  
“잠시 멈춰 쉬어가세요.”  
그 문장이 오늘따라  
더 깊게 와닿았다.  

우리는 너무 많이 뛰었고,  
자주 넘어졌지만,  
그걸 누가 알았을까.  
그래서 여기선,  
잠시 멈추는 것도 괜찮은 일처럼 느껴졌다.  

서울역은 매일  
조금씩 울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동문 너머로 걸어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이 어떤 이유로 이곳을 떠나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모두 계속 걷는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는 아무 일도 없던 척  
다시 걸어간다.  
익숙한 풍경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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