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 맑고 달빛 고요한 밤,
소쇄원의 뜰에 앉아 잠시 마음을 맡긴다.
옛 중종의 세월을 지나
한 선비, 이름 양산보라,
세상의 억울함을 씻을 길 없음을 알고
속세를 등지고 이곳에 머물렀다.
그는 칼을 들지 않고
풀과 나무를 심어 뜻을 세웠으며,
권세를 구하지 않고
산과 물을 벗 삼아 삶을 이어갔다.
그래서 이곳 이름을 소쇄원이라 했으니,
맑고 깨끗하여 티끌 하나 머물지 않는다.
광풍각에 스미는 바람은
천 년이 지나도 여전히 푸르며,
제월당에 걸린 달빛은
어느 밤이나 은은히 빛을 비춘다.
담은 높지 않고,
산과 숲은 경계 없이 품어
하늘과 땅이 스스로 벽이 된다.
이보다 더 큰 풍류를 어디서 볼 수 있으랴.
봄이면 꽃잎이 물 위에 흩날려
달빛 같은 노래를 부르고,
여름이면 대숲의 바람이
선비의 숨결처럼 속삭이며,
가을이면 단풍이 붉은 시를 쓰고
겨울이면 흰 눈이 고요를 선물한다.
세월이 백 년, 또 백 년 흘러도
이 원림의 뜻은 변함이 없다.
자연과 하나 되고자 한 겸허함이다.
송순과 정철이 이곳에 시를 남기고
바람과 달에 마음을 맡겼으니
풍류와 은일의 깊이를 여기서 느낄 수 있다.
오늘 이 길을 찾는 이여,
잠시 세상의 짐을 내려놓고
맑은 바람 한 모금, 흐르는 물 한 올에
마음을 씻어 보라.
광풍각에 기대어 바람을 마시고
제월당에 앉아 달빛을 벗 삼으면
그대 마음 또한 소쇄해질 것이다.
바람은 흐르고 달은 머무니
천지의 이치 또한 그러하다.
사람이여, 욕심을 내려놓고
이 정원에 깃든 뜻을 배워보라.
소쇄원의 이름처럼
맑고 깨끗이 살다 가는 것,
그것이 참된 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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