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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머리 짧게 자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미용실 거울 속 나와
눈을 마주친 순간
가슴 안쪽 어딘가에서
조용히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길게 자란 건
머리카락만이 아니었다.
닿지 않을 말을 기대하며
삼켰던 밤들,
끝끝내 받지 못한 안부를
매일 꺼내 쥐고 살았던 손끝,
그 모든 무언의 계절이
가늘고 검은 실처럼
내 어깨 위에
자라나 있었다.
“이 정도면 괜찮을까요?”
나는 고개만 끄덕였고,
가위 소리는
마치 오래된 울음을
하나씩 끊어내는 소리 같았다.
거울 속 나를 보며
나는 조금
익숙해지고 있었고,
조금
낯설어지고 있었다.
그 머리카락 안에는
한 사람을 오래도록
품었던 내가 있었고,
말 한마디에 무너졌다가도
다시 다정해질 줄 알았던
순진한 마음이 있었다.
나는 긴 시간
묶고, 풀고,
흔들리는 채로
그 사람을 견뎠다.
한 번도 붙잡히지 않은 사랑을
오래도 쥐고 있었구나.
짧아진 머리 끝에서
무언가가 서늘하게 스쳤다.
내내 눌러두었던 감정들이
바람 틈으로 스며들었고,
결국 나는
조용히, 울었다.
사랑은
기다림의 모양만으로
헤아려지는 게 아니었다.
침묵 속에서 미뤄진 마음은
결국,
나를 아프게 하고 있었다.
이제는 안다.
머리가 짧아졌다고
내가 약해진 게 아니라는 걸.
오히려
버티던 마음을 내려놓고
나에게 돌아오는 길 위에서
나는 처음으로,
숨을 쉬었다는 걸.
긴 머리 짧게 자르고,
나는 오늘
나를 다시
살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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