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궁이 앞에 앉은 엄마는
숯불에 갈치를 올리셨다
연기가 눈을 찌르고
가슴을 매워도
그날은 우리 집에 특별한 날이었다
노릇노릇 익어가는 갈치
지글지글 소리마다
고소한 냄새가 마당 끝 감나무까지 퍼졌고
나는 군침 삼키며 엄마 옆을 맴돌았다
아버지는 조심스레
젓가락으로 갈치의 뼈를 갈랐다
잘 익은 살을 발라 내 앞에 놓고
말없이 갈라진 뼈 사이를 드셨다
그때는 몰랐다
그 뼈마저도 귀했던 시절이었단 걸
“많이 먹어라”
그 한마디에 담긴 사랑을
어린 나는 다 알지 못했다
그저 갈치 한 토막이 신기하고 맛있어
허겁지겁 입에 넣었다
엄마도
아버지도
속으론 드시고 싶으셨겠지
하지만
그 갈치 한 마리 안에
당신들의 욕심은 없었고
오직 자식 배 불리는 마음뿐이었다
5일마다 열리는 장날
겨우 사올 수 있던 바다 생선
비싼 값에 망설이며
그마저도 살까 말까
몇 번이고 손에 들었다 놨다 하셨던 엄마
겨울 논은 비어 있고
창고엔 벼가 드문드문했지만
엄마는 꼭 갈치를 사셨다
그날만큼은
우리에게 바다의 맛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걸까
아버지는
한 번도 당신 몫이라 말한 적 없었고
숟가락을 먼저 든 날이 없었다
당신의 그 말 없는 사랑은
갈치 뼈보다 얇고 가늘었지만
한없이 깊었다
이제와 돌아보니
그 갈치 한 토막은
그냥 생선이 아니었다
우리 집 밥상에
가장 귀한 사랑이었고
가장 짠한 기억이었다
그 시절
아궁이 연기에 눈이 시리던 부엌
검은 손등에 숯검정이 묻은 엄마
말없이 진지 드시던 아버지
그 속에 내가 있었다
이제 나는
고단한 하루 끝, 빈 식탁 앞에 앉아
따뜻한 집밥이 그리운 날이면
문득 그 시절이 떠오른다
마트 한편, 냉동 갈치가 진열된 곳에서
눈을 멈추게 된다
저렇게 쉽게 살 수 있는 것을
왜 그땐 그렇게 어려웠을까
그리고 나는 문득
아궁이 앞에 선 엄마와
뼈를 갈라주던 아버지를 떠올린다
가슴 한켠이
뜨겁고 짠 물결로 젖어간다
엄마
아버지
그때 왜 당신들은
한 점 더 드시지 않으셨나요
갈치 한 토막으로
배부르다 말하던 그 웃음 속에
얼마나 참아낸 허기가 있었을까요
나는 이제 안다
사랑은
배려보다 더 깊은
‘포기’라는 걸
그리고 그 포기의 맛은
숯불에 구운 갈치보다
더 짭짤하고 따뜻한 것이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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