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728x90

회색빛 하늘이 천천히 스며들 때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어 깨운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빗방울 소리,  
땅 위에 첫 발자국을 새긴다.  

툭, 툭, 툭—  
서툰 연주처럼 시작된 빗줄기  
금세 거세게 몰아쳐  
세상을 촉촉이 적신다.  

골목길을 달리던 아이들의 웃음도  
처마 끝에 걸려 있던 노란 고양이도  
우산을 펴려던 노인의 손길도  
모두 멈춘다,  
그리고 듣는다.  

소나기가 들려주는 노래를,  
한순간에 여름을 휘감는  
순간의 열정을.  

어느새 발끝이 젖어들고  
나뭇잎 끝에 매달린 빗방울은  
하나둘 흘러내려  
작은 개울을 만든다.  

젖은 땅 위에서 피어나는 흙내음,  
이른 새벽의 차가운 이슬처럼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한바탕 울고 난 뒤의 하늘은  
맑고 깊다.  
어느새 떠나간 구름 뒤로  
햇살이 다시금 미소를 짓는다.  

소나기처럼 스쳐 간 순간들도  
우리의 마음 어딘가에 남아  
조용히 꽃을 피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