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여,
내 가슴에 피는 바람은 이름 없는 꽃이었나이다.
신분의 옷을 걸치고도 나는,
오직 그대의 눈빛에 머물렀습니다.
궁궐의 담장도,
운명을 따라 흐르는 강물도
그대를 지우지 못했지요.
나는 나라의 딸이기 전에,
그대를 사랑한 여인이었습니다.
허나, 사랑이 죄가 된다면
그 죄를, 백 번이고 안고 싶었습니다.
비단 저고리 한 자락도
그대의 손길보다 귀한 것이었겠습니까.
당신이 머문 자리마다 피어난 들꽃이
내 맘 속에도 봄을 틔웠나이다.
허나 우리는,
바람과 구름 사이
닿을 듯 닿지 못하는 운명,
슬픔을 삼킨 하늘과 같았지요.
차마 다가서지 못한 한 걸음,
그리움으로 평생을 걸어야 했습니다.
내 마음을 어찌 알겠소.
예언자의 길이 내게 남긴 것은
권력도 명예도 아닌
당신을 지켜내지 못한 한恨이었소.
나는 세상을 읽는 자였으나
당신 마음 하나 읽지 못했소.
어쩌면, 읽고도
지켜주지 못할 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르오.
백성을 위한 길,
나라를 위한 싸움 속에서도
당신의 눈물이 내게는
천둥처럼 무거웠소.
그대가 내게 말 없이 떠난 날,
나는 하늘의 뜻을 원망했소.
별들이 운명을 삼킨 밤,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며
세 번 눈을 감았소.
사랑이란 말은 감히 입에 담지 못했지만,
그대는 나의 생의 전부였소.
비 내리는 들판에서
그대의 웃음을 떠올리며
나는 끝없는 예언의 길을 걸었소.
바람 되어 다시 만나리라.
하늘도 막지 못할 사랑은
계절을 돌아, 시대를 돌아
구름 저 너머에서 피어나리니.
당신은 나의 비가 되어
이 가슴에 스며들고,
나는 당신의 바람 되어
당신 곁을 맴돌겠지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이름 불리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를 품은 채
세월의 강을 건너리다.
어쩌면 이 사랑은
한 시대가 지고 나서야
비로소 꽃을 피우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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