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7년 겨울,
어머니는 새하얀 손으로
검푸른 자개농의 문을 처음 열었지.
조심스레 접어 넣은 혼수의 살림살이들,
그 안엔
당신이 시작된 삶의 무늬가 숨어 있었어.
자개는 조개의 등껍질,
밤하늘에 흩어진 별처럼
하나하나 깎고 붙여야
비로소 반짝이니까.
그걸 아버지 집에 들고 오셨던 거야,
어머니는.
살림을 시작하겠다는,
두려우면서도 단단한 마음으로.
큰방 한 켠,
햇살이 스며들던 그 자리에서
자개농은 언제나 고요했어.
거기엔
아기 옷도, 설날에 입을 고운 한복도,
아버지의 군복도,
누나의 졸업장도 차곡차곡 쌓였고
가끔은 엄마의 한숨도 접혀 있었지.
그러다 92년,
슬라브 주택이 올라서던 날,
어른들의 고함소리와
땀에 젖은 웃음 속에
자개농은 내 방으로 옮겨졌어.
그날 나는
내 방이 더 이상 아이의 방이 아니란 걸 알았어.
자개농이 들어온 방은
이제 ‘가족의 시간이 물든 방’이었으니까.
밤이면 자개 문을 어루만지며
혼자만의 이야기를 나누었지.
엄마가 내게 속삭이던 말들,
누나들의 웃음소리,
아버지의 고요한 한숨까지
그 자개농 안엔 전부 있었으니까.
그러다 1997년 1월,
엄마는
우리 곁을 조용히 떠나셨어.
자개농의 문을 마지막으로 여셨던 날은
차가운 바람이 방 안까지 들이쳤던 날.
그날, 자개농도
천천히 늙기 시작한 것 같았어.
그리고 훨씬 뒤,
2013년 가을,
마을이 사라졌고
우린 또 다른 삶의 자리로 떠나야 했지.
그 무렵 자개농은 삐걱였고,
문짝 하나는 툭 떨어졌고,
광택은 빛바래져 있었어.
그 자개농을
내 손으로 버렸을 때,
나는 오래된 기억 하나를
가슴에서 뽑아내듯
아프게 느꼈어.
하지만 아무도 몰랐어,
그 안에 엄마가, 누나가,
그리고 ‘그때의 나’까지 있었던 걸.
나는 요즘도
자개농이 보고 싶어.
은빛 무늬에 비치던
엄마의 손등과
누나들의 웃음,
그리고 어릴 적 내가 숨어 울던 시간들이.
보고 싶다,
그 나무 책상도.
네 명의 누나가 돌아가며 쓰던 그 자리,
지우개 가루 속에서
소중한 시간들이 흩어졌던 그 풍경.
자개농은 없지만,
그 안에 담겼던 이야기들은
여전히 내 마음 안에서
반짝여.
슬프고 따뜻하게.
지금 이 순간에도,
아직 거기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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