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안방,
무명천 하나
햇살에 바래고 바람에 말라
고운 주름이 스며든 포대기,
그건 단순한 천이 아니었다.
우리의 첫 요람,
우리 부모님의 두 팔이었다.
작은 등을 조심스레 감싸던 손,
등허리에 천을 돌리고
두 팔을 뒤로 모아
묶을 수 없는 마음까지 묶던
그 한 번의 매듭,
그건 사랑의 시작이었다.
포대기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품었다.
우리를,
그리고 우리 부모님의 하루를.
들쑥날쑥한 울음도,
낮잠의 숨결도,
밥 짓는 연기와 쏟아지는 빗소리도
그 속에 고이 담겨 있었다.
겨울이면 아랫목의 온기를 데우고,
여름이면 장독대 너머 바람 냄새를 품던 포대기.
그 안에서 우리는 울었고,
웃었고,
서서히 세상을 배웠다.
부엌에서 쪼그리고 앉아
김치를 버무리던 어머니,
이마에 땀을 매달고
들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아버지.
그분들의 어깨 위에는
항상 누군가가 올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무게를 잊게 하던 것이
그 하얀 포대기였다.
세상은 빠르게 바뀌었다.
아기띠가 생기고,
유모차가 있고,
폼 나는 브랜드가 넘쳐났지만
우리 기억 속 가장 따뜻한 품은
허리를 굽히고,
등을 내주던 그 뒷모습이었다.
포대기 속엔
말로 다 하지 못한 사랑이 있었다.
두 팔로 끌어안던 믿음,
손끝으로 전해지던 위로,
이름 모를 노래가 흘러나오던 그 품.
그 품이 있어 우리는 자랐고,
그 온기를 기억하며 살아간다.
우리의 부모님은
그 포대기로 우리를 안았다.
그날의 허리는 지금 굽었고,
그 손은 이제 주름졌지만,
여전히 그 매듭 하나로
우리를 지탱해 주신다.
어쩌면,
우리는 다시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무거운 것을 안는 법,
천천히 걸어가는 마음,
그리고 묵묵히 품는 사랑.
한 자락의 천,
묶이지 않는 마음,
그것이 바로
우리의 포대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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