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마당 끝 느티나무...
daepodong918
2025. 5. 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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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끝, 도랑과 마당 사이
굽은 둑배미에 뿌리내린
우리 집 느티나무 한 그루,
그 아래는 마치
세상과 집 사이, 그 경계 같았지.
햇살 드문드문 비칠 적엔
가지 틈새로 하늘을 훔쳐봤고
빗방울 모아 뚝뚝 떨구던 잎사귀는
말없이 계절을 바꾸곤 했지.
아버지는 저녁나절
청자담배 한 모금 물고
그 나무 밑 둥치에 앉으셨지.
말은 없었지만
그 연기 속에 많은 게 담겨 있었어.
하루의 무게, 논두렁 소식,
가끔은 나한테 주고픈
단단한 등짝 같은 마음도.
나는 맨발로 그 둔덕을 오르내리며
도랑 물장난에 시간 잊고,
풀벌레 잡다 바지에 흙 묻히고
그 느티나무 옆에서 자주 혼나기도 했지.
“그만 좀 돌아다녀, 해 지겠다.”
어머니 목소리가
바람 타고 들려왔어.
가을이면 잎 밟는 소리가 바삭했고
나는 괜히 한두 장 주워
돌멩이 옆에 눕혀놨지.
그러다 까맣게 탄 열매를
마치 보물처럼 쥐고 돌아오기도 했어.
그 나무는 말없이 있었지만
나보다 먼저 계절을 알고
내 마음보다 먼저 내 마음을 달랬지.
어린 나는 그걸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내가 자란 건
바로 그 그늘 아래였단 걸.
세월이 흘러
집도, 마당도, 도랑도 사라졌지만
느티나무는 아직도 내 안에 있어.
눈 감으면
마당 끝, 그 자리에서
내가 다시 뛰어가는 모습이 보여.
말없이 품어주던
그 오래된 그늘,
거기가 내 처음 고향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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